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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이솔
- 작성일201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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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이솔
- 작성일2015-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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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
- 작성자이솔
- 작성일2015-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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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 일기는 자기반성과 성찰의 은밀한 쪽방이었다고 했다. 일기를 통해 자기성찰을 한다면 대학교수로서 보다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최고 영광의 날이다. 처음으로 학교에 합격했다. 모두들 칭찬을 한다. 국민학교 선생님들, 面직원들 모두가 기뻐하고 영광을 주고 있다. 아버님 산소에 가서 절을 하고 울었다. 만약에 지금 계시다면. 아버님의 진실한 아들이 되겠다고 맹세했다. 어머님의 기쁨도 기쁨이기는 하겠지만, 일단 사회의 일보에 있어서 성공을 했다고 생각하니……. Kennedy와 같은 정치가가 나의 꿈이다. 노력해 보자.” 위의 내용은 필자가 고등학교 3학년인 1964년(단기4297년) 2월 14일 금요일에 쓴 일기의 한 부분이다. 그 전날이 음력 설날이었지만 다음 날이 대입 합격자 발표일이기 때문에 명절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초조하게 기다리다 아침 신문에 난 합격자 발표를 고향 여주에서 보고 난 후 기쁨에 넘쳐 당일 저녁에 쓴 일기의 내용이다. 당시 필자가 지원한 학과의 경쟁률은 무려 13대 1이었다. 더구나 초등학교를 시골에서 졸업한 후 서울로 유학했으나 중·고교 1차 입학시험에서 불합격했던 경험 때문에 대학까지 1차에 합격하지 못할까 상당히 걱정하던 차에 합격했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아버님이 고1 때 돌아가셔 농사를 하시는 홀어머니 슬하에 서울 유학을 어렵게 했으니, 입학시험에 대한 부담은 상당했다. 여하튼 1964년 3월 2일 입학식으로 시작된 대학과 나의 인연은 ROTC 소대장 시절, 제대 후 사회생활 수년을 제외하고 지난해 8월 대학 총장을 끝으로 캠퍼스를 떠날 때까지 무려 43년이나 이어졌다. 따라서 나의 인생 대부분은 대학에서 보낸 것이며 이런 대학캠퍼스 생활의 생생한 기록이 수십 권의 빛바랜 일기장에 기록돼 있다. 필자는 중학교 3학년인 1961년부터 일기를 써왔으니, 지금까지 55년째 일기를 쓰고 있는 셈이다. 결코 짧지 않은 기간 일기를 쓴 것을 생각하면 한편으로 내 자신이 대견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반면 그 많은 기간 매일같이 일기를 쓰면서 교육자로서 인생을 부끄럽지 않게 살았는지 새삼 되새기게 된다. 지난해 총장 퇴임 직전 언론사와 퇴임 인터뷰를 하다 일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 후 집에 와서 일기장을 정리하다가 1961년부터 일기를 쓰게 된 것을 발견하게 됐으며, 최근 지난 일을 회고하면서 자주 일기장을 들추게 된다. 일기장에는 입학식에서 대학 신입생의 각오, 동아리활동 기록, 인접 여대와의 미팅, 미국 유학시절, 대학교수로서의 첫 강의 소감, 학생들과의 워크숍에서 있었던 일, 총장 재직 시의 대학 운영 방침 등 거의 43년간 대학캠퍼스에서 있었던 기록이 여러 가지 소감과 함께 적혀있다. 이따금씩 펼쳐보는 일기장에서 강의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수업에 임해 당황했던 순간, 젊은 시절 학생들과 수학여행 중 해변에서 밤새도록 소주를 마시면서 인생을 토론했던 일, 사랑하는 제자가 학위를 받아 축하해 주던 장면 등이 주마등같이 스쳐가고 있다. 때로는 일기를 보면서 그때 있었던 일에 웃기도 하고, 또는 그 당시 내가 좀 더 최선을 다했더라면 하던 일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은 아쉬운 내용도 있다.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60여 년간 일기를 썼다고 하는 대문호 톨스토이는 일기는 자기반성과 성찰의 은밀한 쪽방이었다고 말하고 있으며, 그의 사상과 문학도 일기가 기초가 됐다고 한다. 필자에게도 일기는 개인의 생생한 삶의 기록일 뿐만 아니라 자기성찰의 시간이었다. 때문에 해외여행 중에도 일기장은 여행 필수품이었다. 교수 시절,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일기를 통한 개인의 기록과 성찰의 중요성을 자주 강조했다. 비록 개인의 보잘 것 없는 삶의 기록이지만 일기는 중요한 역사적 기록이 될 수 있으며, 미래를 위한 설계의 기초도 된다. 일기를 통해 자기성찰을 한다면 보다 나은 대학교수로서의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김영래 아주대 명예교수 [2015.2.10 교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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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
- 작성자이솔
- 작성일2015-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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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을미년 새해가 시작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앞으로 10일 있으면 민족의 명절인 음력설을 맞이하게 된다. 을미년의 상징이 청양(Blue Sheep)이라고 하며, 이는 상생과 평화, 그리고 화합을 뜻한다고 하는데, 새해 벽두부터 을미년 청양띠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남한에서는 물론 북한에서도 통일에 관한 논의가 무성하다. 지난해 연말 통일부 장관이 남북 간 상호 관심사를 논의하기 위한 당국자 대화를 가질 것을 공식 제의했는가 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사와 기자회견에서 분단 70년을 극복하기 위한 남북한의 신뢰관계를 강조하면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통일기반을 구축하는 한 해가 되기를 역설하였다. 더구나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도 고위급 접촉을 재개할 수 있다는 의지를 신년사에서 표명하였다. 광복 70년, 분단 70년이 되는 을미년을 맞이하여 국내는 물론 남북관계도 갈등과 불화로부터 상생과 평화의 기틀이 마련되는 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국민 모두의 희망일 것이다. 남북한은 지난 70년간 광복과 분단이라는 이중적 구조 속에서, 끊임없는 변화와 갈등 속에서 지구촌의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있어 관심 대상지역이 되고 있다. 그러나 과연 남북관계가 청양띠의 바람같이 훈풍이 불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남북관계는 아직도 갈등상태일 뿐만 아니라 핵문제, 인권문제와 같은 폭발성을 가진 쟁점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반도를 에워싸고 있는 열강들의 이해관계는 날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훈풍이 불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너무도 많다. 지난해 연초에 제기된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으로 통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7월에는 통일준비위원회까지 조직, 활동하고 있으나, 실제적 차원의 남북관계는 5·24 조치 이후 한 발자국의 진전도 없이 담보상태이다. 남북은 6·25한국동란의 피비린내 나는 민족상쟁의 비극적 역사를 경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풀지 못하는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광복을 평화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금년은 박근혜 대통령 임기 3년차이다. 금년은 총선과 같은 중요한 정치행사도 없어 경제문제뿐만 아니라 남북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국정을 집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내년 4월에는 총선, 2017년에는 대선 일정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금년이야말로 남북문제에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아닌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하여 더 이상 정부에만 의존해서는 한계가 있다. 동서독의 사례에서 보듯이 지난 7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쌓인 장벽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남북 간의 이질감 해소가 무엇보다도 급선무이다. 이질감을 해소하기 위한 지름길은 남북간의 민간분야에서 상호교류가 가장 중요하다. 우리 국민의 약 92%가 분단 이후 출생한 세대로 남북한 주민간의 이질감이 더욱 심화되어 이대로 가면 남북한은 남남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정부는 음력설을 맞이하여 이산가족 상봉을 금년 대북정책에 최우선 순위로 추진해야 된다.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로 등록된 12만 9천 5백여 명 중 사망자가 6만명을 넘어 현재 남아있는 이산가족 수는 약 6만9천2백여 명이며, 이중 80세 이상 고령인구가 52% 정도 된다고 한다. 매년 3천8백여 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나 금년을 기점으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중 사망 인구가 더욱 많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어 이산가족의 상봉은 시급한 과제이다. 이산가족들에게 가족 상봉과 같은 큰 명절 선물이 어디 있겠는가? 남북한 당국자가 말로만 남북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말고 우선 이산가족 상봉 계획을 조속 발표하여 이산가족들에게 희망의 선물을 음력설에 주기 바란다. 이것이야말로 을미년 벽두 남북한이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기반 조성의 첫 과제가 아닌지. 김영래 아주대 명예교수 [2015.2.10 경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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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
- 작성자이솔
- 작성일2015-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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